이타적 인간의 출현


저자: 최정규
역자: 정지인
출판: 뿌리와 이파리

 
  도덕적인 문제 또는 철학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이타심을 경제학과 수학 기반의 게임이론과 진화론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과학적 접근으로 이타심을 설명한다는 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들에 자연스럽게 부여되어 지는 인간미가 배제되어 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과학이 본질적으로 미덕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임이론이 가정하고 있는 최선의 이득을 추구하는 행동은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행동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 이기적 행동의 추구가 우월한 전략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타적인 행동들이 현존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어째서 그러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 남아 있으며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진화론, 게임이론, 사회과학이론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본 책에서 말하고 있는 7개의 가설을 간략히 요약하여 소개한다.

* 혈연선택가설
1963년 생물학자인 윌리암 해밀턴(William Hamilton)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하였다. 혈연적 관계의 친밀도(유전학적 적합도, 유전자의 공유)가 높은 대상 또는 집단을 위해 이타적 행동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개미나 꿀벌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이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전자적 공유가 없는 대상을 위한 이타적 행동(우정, 입양, 사회봉사 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 반복-상호성 가설
게임이론에서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는 최적의 전략을 찾는 대회를 개최했던 로버트 액설로드(1984, Robert Axelrod)의 연구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반복-상호성 가설을 설명하는 단순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연구라 하겠다. 요약하면 협력이라는 이타적 행동은 보복(배신이나 무임승차에 대한 응징으로)에 대한 두려움 또는 위급한 처지에 놓였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한 보험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로 어떤 흡혈 박지는 먹이를 취득(흡혈)한 개체가 그렇지 못한 이웃한 개체에게 피를 토해내 제공한다. 특이한 것은 그 대상이 자신이 흡혈하지 못했을 때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 주었던 적이 있던 개체에게 더 자주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는 근본적으로 장기적이면서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배신을 통한 이기적 행동보다는 협력이라는 이타적 행동이 우월전략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복-상호성 가설은 이타심, 협력에 대한 설명으로 많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무한한 반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과 1:1 2개체간의 관계가 아닌 다수가 얽혀 있는 복잡한 상황에서는 그 설명의 힘이 다소 부족해 진다. 먼저, 사회적 관계가 아무리 장기적이고 반복적이라도 그 시간과 횟수는 분명 제한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적, 횟수적 제한이 있는 반복이라면 협조전략 보다는 배신하는 전략이 더 우월전략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의 이타적 행동은 반복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둘째로 복잡한 사회관계에서 배신행위를 처벌하려 할 때 배신자를 정확히 가려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배신자나 무임승차자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협조하지 않아도 되는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유유상종 가설
혈연선택 가설과 반복-상호성 가설이 설명하고 있지 못한 유전적 공유도 적으며, 반복적인 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이다. 이는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 우월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거래를 할 때 이타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을 피하고 이타적인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이 이롭다. 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비협조적인 이기적인 행동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한다. 둘째로 어떤 집단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집단의 유대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유대관계를 해치는 비협조적인 사람은 처벌되거나 퇴출되어지게 됨으로 이타적 행동을 강화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속성들이 유유상종의 현상을 야기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유상종 가설은 매우 그럴듯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 사회가 그 동안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유대관계라는 집단의 동질성만으로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 사회의 발전은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한편으로는 필요로 하기 대문이다. 이러한 이질성이 있어야 분업이 가능하며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우월전략이 동질성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면 결국은 사회발전을 저해시키는 열등전략이 되고 마는 것이다.

*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
이타심을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신호 보내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배우자 선택의 상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단순히 말로만 주장하는 사람 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데 신뢰롭게 되며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부가적인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고 있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역시 이타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잘 설명해 주는 듯 하다.
또한 전쟁에서 선봉에 서는 것은 자신의 용맹을 신뢰롭게 과시함으로써 진급과 포상을 받는 다는 것, 때로는 싸움에 앞서 주먹으로 벽을 때리거나 각목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는 행동은 자신의 능력을 사전에 과시함으로써 상대를 주눅들게 만든 다는 이유로 이를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만약, 값비싼 신호 보내기가 이타적 행동의 주된 이유라면 이타적 행동을 통해 지불한 비용보다 더 값지다고 판단되는 어떤 이득을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상식적으로는 그러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듯한 상황에서도 발현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을 사회적 관계어서 일반화된 우월전략으로 받아 들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 의사소통 가설
  죄수의 딜레마나 공공재 게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소통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 의사소통을 통해 주어진 공유된 정보는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데 결국 서로를 위한 이타적 행동은 모든 구성원에게 다시 이득으로 되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의사소통을 통해 공유된 정보가 딜레마 상황에서 반드시 이타적 행동으로 유발된다고 말하기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배신하는 전략이 더 우월한 전략이 되기 때문이다. , 나 하나가 배신한다고 하여 집단이 비극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는 다는 믿음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게 되며 다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집단 선택 가설
이타심이라는 속성이 유전적이든 문화적이든 사회라고 하는 집단적인 환경 즉, 자연에 의해 선택되어 진다는 설명이다. 매우 전형적인 진화론적 관점인 듯 하다. 이면에는 개인적 차원의 이타심은 진화적 우월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집단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개인들이 많아야 집단간 경쟁력이 우월해지게 되기 때문에 집단 차원에서 이타적 개인들을 도태시키지 않고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선택의 과정보다 집단선택의 과정이 더 강하게 요구 됨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듯 하다. 또한 특정 집단내부에서의 이타적 행동은 타집단과의 관계에서는 이타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집단내부에서는 이타적이어야 하고 외부집단에게는 배타적이어야 특정 집단의 유지와 발전이 강화되게 되는데 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타집단을 위한 선한 행동의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 공간구조 효과
유유상종 가설과 집단 선택 가설을 통합하여 집단 선택 가설의 문제점을 보완 및 설명하고 있다. 행위주체들이 상호작용적 상황에서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전략 중에 우연하게 선택된 이로운 전략이 모델화 되어 짐으로써 이를 지속적으로 모델로 삼고 이후의 전략으로 채택하게 되며 나아가 집단 구성원들의 모델로 채택되기도 하는데 이를 전역화된 지식습득(Global learning) 과정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Global) 하다기 보다는 국지적(Local)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국지화 현상이 부분적 유유상종 현상을 불러 일으키고 그 결과 집단 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시 말해 이타적 집단 중심에 근접할수록 이타적 속성이 강해지고 이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와 정반대인 이기적 속성의 집단이 형성하게 되며 이는 집단내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이 우월하지만 타집단에 대해서는 이기적인 행동이 우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초기 이타심이 지식습득 과정의 모델로 채택되어 진다는 주장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무작위적인 전략의 시도를 제시하였으나 이는 그리 현실적이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이타심이 글로벌한 속성을 갖기 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인 이웃이라는 국지적인 공간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면에서 그럴 듯 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본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이기적 행동과 이타적 행동이 추구하는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른가? 이기심을 포괄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 이타심도 이기심의 한 부분이 되고 만다.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들은 분명 이기적 행동들과 구분되어지는 현상이지만 결국 그 행동의 목적이 자기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든 그것이 도덕적 가치나 미덕을 추구함으로써 얻는 자기 만족감이나 행복감이든, 집단 선택이나 공간구조에 의해 결정되어 지더라도 이기적이다라는 정의와 분리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 이타적 인간, 세상을 가져라!”에서 개미, , 박쥐 또는 기타 야생 동물사회의 이타적 행동들 보다는 인간 사회의 이타적 행동들의 특성들을 설명함으로써 조금은 인간미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타적 행동을 진화의 산물로 여긴다는 것 즉, 선택되어 진다거나 공간구조의 제약에 의한다거나, 자기 유전자의 존속을 위한 강화된 행동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회 정의 실현이나 미덕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는 철학적인 고민들이 필요할 듯 하다.


** 목차 **

개정증보판 서문
머리말: 여행을 시작하며

1부 죄수의 딜레마를 넘어서
1장 팔이 굽혀지지 않는데 밥을 어떻게 먹지?
무임승차와 선행의 갈림길 / 사람들은 왜 헌혈을 하는가?
2장 자백만이 살길이다!
죄수의 딜레마 / 게임의 조건
3장 돕지 않는 것이 남는 장사다
게임으로 보는 이타적 행동 /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4장 스미스 요원의 경고
지구를 갉아먹는 바이러스, 인간 / ‘나 하나쯤이야로 초래되는 비극 / 약속은 어기는 편이 낫다
5장 우리 마을에도 가로등을 달 수 있을까?
가로등이냐 소주냐, 그것이 문제로다 / 골목길은 영영 더러울 수밖에 없는가? / 결과는 시장의 실패
6장 암울한 이론, 따뜻한 현실
딜레마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 희생과 헌신의 동물 사회
7장 유전자는 피보다 진하다
수수께끼의 첫 번째 열쇠, 혈연선택 가설 / 유전자를 나눈 뜨거운 사이 / 유전자의 눈으로 본 세상, 이기적 유전자 / 알고 보면 이기적인 꿀벌의 세계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선행을 베푸는 당신
8장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수께끼의 두 번째 열쇠, 반복?상호성 가설 / 침팬지가 털을 다듬어주는 원칙 / 큰가시고기, 그 용감함의 비결 / 모두가 보험에 든 수렵채취부족 / 여전히 남아 있는 수수께끼 / 게임은 반복되어야 한다 / 죄수의 딜레마에서 루소의 사슴사냥으로 / 반복?상호성 가설은 해답이 될 수 있는가?
9장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반복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 실험실로부터 날아온 보고서 / 다수가 참여하는 거래의 경우 / 예상을 뒤엎는 호크스의 발견 / 2% 부족한 반복?상호성 가설
10장 앙갚음의 미학
반복과 보복의 관계 / 이타적인 보복도 있다 /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
11장 끼리끼리 노는군
수수께끼의 세 번째 열쇠, 유유상종 가설 /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과 만난다 / 유유상종에는 비용이 든다
12장 가격과 신뢰는 비례한다?
수수께끼의 네 번째 열쇠,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 / 가장 잘 달리는 영양이 가장 높이 뛴다 / 잘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선행
13장 대화는 값싼 수다떨기에 불과한가?
수수께끼의 다섯 번째 열쇠, 의사소통 가설 / 의사소통으로 비극을 막을 수 있는가? / 백번의 메신저보다 한잔 술이 낫다
14장 뭉쳐야 산다!
수수께끼의 여섯 번째 열쇠, 집단선택 가설 / 이타적 인간이 사회의 경쟁력이다 / 속도의 비밀
15장 평화의 그물망으로 욕심을 가두다
소득이 평등할수록 이타적이 된다? / 강력한 평등주의 / 로마에 가서는 로마인들이 하는 대로
16장 안으로는 이타적이고, 밖으로는 배타적인
내부인과 외부인의 차별 / 외부인에 대한 적대와 이타성의 공진화
17장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수수께끼의 일곱 번째 열쇠, 공간구조 효과 / 누구로부터 배우는가? /
도넛 모양의 사회 / 국지화 효과 실험 /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위한 조건들
18장 새로운 여행의 시작

2부 이타적 인간, 세상을 가져라!
19장 돈이냐 정의냐
얼마면 되겠어? / 빗나간 예측 / 정의로운 독재자들 / 손해와 불공평, 무엇을 택할 것인가?
20장 정글로부터 얻은 교훈
문화별로 보는 상호적 인간 / 정글에서의 최후통첩 게임
21장 호의에는 호의로
노동계약과 신뢰 게임 / 노동시장의 특수성 /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하여

맺음말

부록: 게임이론 입문
1. 게임이란 무엇인가?
2. 최적대응과 내시 균형
3. 다양한 유형의 게임들
4. 순차적 게임과 게임트리
5. 진화적 안정성
6. 지식전수와 전략수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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